2008년 4월 29일 화요일

세계체육사-노희덕

2. 경기 스포츠의 보급
메이지 시대 초기에는 각 대학에 초빙된 외국인 교사들에 의해 수많(394)은 서구식 스포츠가 전해졌다. 예를 들어서 야구는 개척사가학교의 교사 베츠, 동경대학의 전신인 개성(開成) 학교의 교사 윌슨 등에 의해 1873년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그 후에도 개성학교의 마젯 등도 야구를 열심히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1877년 미국에서 귀국한 히라오카도 보스턴에서 철도기술을 배우는 한편 야구도 배워, 귀국 후 철도국에 야구팀을 결성하여 당시 야구계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런 식으로 메이지 시대에는 많은 스포츠가 전해져 어떤 것은 일본 국내에서 정착되지 않았으나 야구, 축구, 육상경기, 럭비, 배구, 수구, 탁구, 정구, 골프, 하키, 조정, 수구, 스키 등은 일본에서도 완전히 정착하여 오늘날에도 많이 행해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일본으로 전해진 수많은 스포츠는 초기에는 학교를 중심으로 보급되었다. 예를 들어서 고등사범학교에서는 정구, 풋볼, 야구 등 8가지 운동부를 설치하고 학생들은 적어도 하나의 운동부에 소속되어 일정한 시간 운동해야 하는 것으로 되었다. 이런 식으로 전국의 학교에서 클럽조직을 만들어 학교대항 경기 등도 많이 행해지게 되었다. 일본의 경기 스포츠는 이와 같이 학교를 중심으로 발전한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야구나 축구와 같은 경기는 넓은 공간이 필요(395)한데, 이때 마침 중학교에서 병식체조가 학교에 도입되었다. 병식체조는 넓은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학생들은 학교에서 쉽게 경기 스포츠를 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1930년대 이후 학생을 중심으로 한 경기조직이 창설되어 학교대항 경기는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와세다 대학 구장에서는 1933년에 야구와 럭비에서 처음으로 야간경기가 실시되었다. 특히 야구는 흥행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어 1934년에는 동경야구클럽이 프로팀으로 설립되었다. 이 팀은 미국의 프로야구팀의 도일을 계기로 창설되었는데, 1935년에는 미국에 원정도 하였다. 1936년에는 직업야구연맹의 결성과 프로야구 전문구장의 완성으로 프로야구가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3. 올림픽 참가
1909년 동경고등사범학교 교장이었던 가노지고로오(嘉納治五郞)는 당시 프랑스 대사에 의해 IOC 위원으로 추천되어 일본인으로 처음으로 위원이 되었다. 그 후 1912년 스톡홀름 대회참가를 목표로 1911년에 대일보체육협회가 설립되었다. 이듬해 단거리와 마라톤에 한 명씩 선수를 보냈다. 입상은 할 수 없었으나 처음으로 참가하였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었다. 그 후 1920년 안토와프 대회에는 19명, 제8회 파리 대회에는 26명, 제9회 암스테르담 대회에는 63명, 제10회 로스앤젤레스 대회에는 122명, 제11회 베를린 대회에는 294명이 참가하여 우승자도 9회에 2명, 10회 7명, 11회에는 마라톤의 손기정을 포함하여 6명이 나왔다.(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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